대구에서 새벽에 차를 타고 출발해 경기 파주시 서원밸리 컨트리클럽에 도착했는데 장대비가 쏟아졌다. 혹시라도 길이 막힐까 행사 시작 3시간 전에 도착한 한 아이는 “우리 라운드 어떻게 해요, 비 와도 할 수 있는 거죠”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꼭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4월 22일 비슷한 걱정을 하는 골프 꿈나무 72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4월24일부터 나흘간 경기 파주시 서원밸리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특별한 고객(VIP)을 초청해 프로 선수와 함께 라운드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암 대신 미래 세대 육성 프로젝트의 하나로 ‘우리금융 드림 라운드(이하 드림 하운드)’를 열었다.
프로 선수를 꿈꾸는 지방 골프 특성화 초등학교 학생의 꿈을 응원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의 하나로 마련했다고 한다. 이들 꿈나무 72명에게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KPGA투어 선수 36명과 한 팀을 이뤄 라운드하며 직접 레슨을 받고 골프 선배의 경험담을 들어볼 기회였다. 아이들의 뜨거운 눈빛에 다음 날 프로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프로 골퍼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드림 라운드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매년 5월 골프장을 개방해 무료 자선 그린 콘서트를 여는 서원밸리 컨트리클럽도 이런 행사 취지에 적극 협조했다.
프로와 동반 플레이한 어린이 선수들
이 대회는 미국 남자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임성재의 대회 3연패 여부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임성재는 자신의 스폰서(서브 스폰서)인 우리금융그룹이 4년 전 출범시킨 이 대회에 나와 2023년, 2024년 잇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KPGA투어 26년 만의 단일 대회 3관왕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난 2년과 달라진 대회 장소, 시차 적응 등의 환경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1타 차이로 충격의 컷 탈락을 당했다.
하지만 골프 대회를 통해 나눔의 정신을 전파하려는 대회 정신이 큰 호응을 받았다.
드림 라운드는 많은 비에 18홀 라운드를 9홀로 줄였지만, 참가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최진호 프로와 같은 조에서 공을 친 소래초등학교 6학년 최대휘 어린이는 “TV로만 보던 프로와 라운드해서 아주 영광스러웠다”며 “최진호 프로가 스무 발자국 내리막 퍼터를 정확하게 넣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고 엄지 척을 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최진호 프로는 “비가 오든 날씨가 어떻든 골프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했다”며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아들 셋을 둔 문경준 프로는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즐기면서 가까워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고, 아이들은 우리를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기업의 이런 사회 공헌 활동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도 했다. 문경준 프로와 함께 라운드를 한 하빈초교 6학년 현창민 어린이는 “내가 드라이버를 칠 때 성급하게 치는 경향이 있는데 한 박자 정도 늦게 치면 더 잘 칠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치니까 정말 잘 맞았다”며 싱글벙글했다.
1 굿윌스토어에 직접 사용하던 퍼터를 기부하는 조우영 프로. 2 우리금융 드림 라운드에서 베스트 스코어상 수상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우리금융그룹 임종룡(맨 오른쪽) 회장, 옥태훈(가운데) 프로, 성석초 4학년 양예성(가운데), 아림초 4학년 김윤(왼쪽). 3 발달장애가 있는 김승현 작가(2025 서울문화재단 16기 입주작가)의 ‘산호숲의 오후’ 작품 전시. /사진 대회 조직위
"골프 저변 확대에 큰 힘이 될 것"
드림 라운드 행사를 앞두고 참가 프로들은 행사에 참가할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해남 삼산초, 대구 하빈초, 포천 지현초, 충주 가흥초, 문경 당포초)를 찾아가 미리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해남초를 방문했던 이정환 프로는 “그때 만났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아주 반가웠다”며 “요즘은 과거보다 골프 유망주가 줄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생기면 더 쉽게 골프를 접할 수 있고 선수와 같이 호흡하면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상현 프로는 “이런 궂은 날씨에도 ‘프로님 18홀 돌아요~’ 하는 아이들 표정에서 이 행사가 얼마나 뜻깊은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태희 프로는 “아이들을 위해 이런 행사를 여는 것이 골프 저변 확대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유일의 발달장애 프로 골퍼로 2라운드 공동 4위로 컷을 통과한 이승민 프로도 이 행사에 참가했다. 이승민 프로는 “어릴 적골프를 배울 때 그냥 소풍 가는 마음으로 했다(미국에 거주)”며 “오늘이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나중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 공헌 활동 지속"
하빈초 교사인 진성호씨는 “골프 꿈나무뿐만 아니라 농어촌, 산촌 지역 학생까지 초대해 주고 뜻깊은 행사를 진행해 줘서 감사하다. 학생이 KPGA투어 선수와 라운드를 돌면서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학생을 소중히 그리고 극진히 대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현초 5학년 임성민 어린이와 양성빈 어린이는 “선생님(프로)이 치는 순간 공이 쭉쭉 뻗어 가는 게 너무 신기했다. 골프에 더욱더 빠지게 되는 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지방 골프 특성화 초등학교 학생의 안정적 훈련을 위한 지원금 전달식도 함께 진행됐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아이들이 골프를 통해 꿈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우리금융그룹은 미래 세대를 위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회 기간 클럽하우스 근처에 ‘굿윌스토어 우리금융챔피언십점(팝업 스토어)’을 열어 대회에 응원 온 팬과 프로 골퍼가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굿윌스토어는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자원 순환을 돕는 매장. 대회 현장에서 골프용품에 관심이 많은 갤러리에게 인기를 끌었다. 팝업 스토어 한편에는 ‘굿윌기부함’을 마련해 현장에서 물품을 기부한 경우 커피 쿠폰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발달장애 미술가 육성 프로그램 ‘우리시각’ 출신 김승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해 장애인 예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을 마련했다. 골프장에서 기부에 동참하고 장애인 예술을 접하는 경험을 통해 기부문화 확산과 발달장애인 인식 개선에 작은 도움이 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대회 관계자는 “우리금융 챔피언십을 골프 팬의 축제이자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를 위한 축제로 확대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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