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출신인 최경주(54)는 역도를 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골프채를 잡았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체육 선생님이 운동부 할 생각 있는 사람들을 두 줄로 세웠다. 한 줄은 역도부, 다른 한 줄은 골프부였다. 그런데 내가 선 줄이 우연히 골프부 줄이었다” 고 했다. 중학교 때 역도 선수를 했던 그는 팔이 길어 역도에 어울리는 체형이 아니라고 해 그만뒀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양용은(52)은 보디빌딩 선수를 꿈꾸다 열아홉 살에야 골프에 입문했다.
“식스팩(복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무릎을 다쳐 그만뒀다. 우연한 기회에 골프를 접하게 됐는데 원래 목표는 골프 연습장 티칭 프로였다”고 했다. “티칭 프로가 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며 “점점 꿈이 커졌다”고 했다.
개척하는 최경주, 뒤따르는 앙용은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두 선수는 ‘잡초’처럼 골프를 쳤다. 부모는 아들이 헛바람이 든 게 아닌지 걱정했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이나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역경을 딛고 선 최경주와 양용은은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 골퍼로 활약하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양용은은 9월 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 어센션채리티클래식(총상금 210만달러) 최종일 연장전에서 버디를 잡아내 시니어 무대의 전설 베른하르트 랑거(67·독일)를 제쳤다.
2022년부터 만 50세 이상 선수가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 투어에 입성한 양용은은 데뷔 3년 만에 72번째 출전 경기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 71차례 대회에서 준우승 두 번과 3위 세 번 등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신인이던 2022년, 이 대회에서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에게 1타가 뒤져 2위에 그쳤던 아쉬움도 풀었다.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한국 선수 우승은 메이저대회인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 등 2승을 올린 최경주에 이어 양용은이 두 번째다. 양용은은 “한국 골프의 길을 개척하는 최경주 선배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최경주가 2000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 진출했고, 그 뒤를 2008년 양용은이 이었다.
양용은은 “예전엔 많이 먹고 든든한 뱃심으로 골프를 했다면, 지금은 덜 먹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경쟁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라고 했다.
8년째 몸무게 82~83㎏을 유지하는 그는 경기가 없을 때 하루 16시간씩 간헐적 단식을 한다고 했다. 오후 7시에 저녁을 마치면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꼭 필요한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왼쪽부터) 양용은이 어센션채리티 클래식 최종 라운드 18번 그린에서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기 위해 버디 퍼팅을 한 뒤, 독일의 베른하르트 랑거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양용은과 그의 아내 지니 양이 우승 후 어센션채리티 클래식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9월 6일 어센션채리티 클래식 1라운드에서 최경주가 2번 페어웨이에서 샷을 날리고 있다. /AFP연합
54세 생일에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최고령 우승을 차지한 최경주가 술과 커피, 탄산음료를 끊었다고 해 화제가 됐는데 양용은도 마찬가지였다. “커피와 탄산음료는 원래 잘 마시지 않았고, 술은 8개월 전 끊었다” 며 “요즘 나이에는 뭘 새로 하는 것보다는 뭘 하지 않아서 얻는 에너지가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스트레칭은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은 주 3회 이상 한다. “최근 턱걸이도 시작했는데 처음엔 몇 개 못 했는데 이제 한 번에 10개 정도 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주말 골퍼를 위한 최고의 운동으로 스쾃을 권했다. “100번을 2세트로 나눠서 50번씩 꾸준히 하면 운동 효과가 정말 크다”고 했다.
최경주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 위해 밥은 전보다 3분의 1을 덜어냈다. 국 종류도 시금칫국이나 전복 미역국 등 담백하게 먹고 삼겹살은 수육으로 조리한다. 술과 탄산음료를 끊자 절제된 식사습관을 갖게 됐다. 하루 세끼 외에 군것질은 거의 안 한다”고 했다.
골프에 대한 깊은 연구는 공통점
최경주는 2년 전부터 미국 댈러스 집 근처 트레이닝 전문 센터에서 몸 관리를 체계적으로 받고 있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고 근력 운동도 중량에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한다. 체육관에 가지 않더라도 짬짬이 매일 스쾃 120개를 하고 팔굽혀펴기 20~25개를 하고 있다. 묵직한 악력기를 갖고 논다.
양용은은 PGA투어에서 2승을 거뒀지만, 훨씬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9·미국)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덕분이다. 이번엔 ‘시니어 무대의 타이거 우즈’라 불리던 랑거를 이겼다. 67세 1개월인 랑거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지난해 US 시니어오픈에서 세운 최고령 우승( 65세 10개월 5일) 기록과 최다승(46승) 기록을 새로 쓸 수 있었다.
양용은이 큰 승부에 강한 비결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단순한 배짱이다. 이날도 “연장에 가면 이기든가 지든가 둘 중 하나인데 뭘 걱정하나 생각했다”고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최경주는 야디지북(골프 코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수첩)에 성경 구절을 적어 놓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읽는다고 한다. 챔피언스 투어 메이저 대회인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 때는 잠언 구절인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를 읽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양용은과 최경주는 골프에 대한 연구가 깊다. 양용은은 지금도 평균 285야드 드라이버 샷을 날린다. PGA투어 시절보다 5야드밖에 줄지 않았다. 비결은 공의 탄도를 높이고 스핀양은 줄이는 자기만의 드라이버 샷 공식을 발견한 것이다. 클럽 헤드의 로프트는 6.9도로 낮추고 임팩트 시 15도가량 올려 치는 독특한 스윙을 한다. 양용은은 “국내에서 뛰던 1990년대 이 같은 방법으로 300야드 넘게 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며 “국내에선 OB(아웃오브바운즈) 구역이 많아 그렇게 긴 장타는 필요 없어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경주는 파워 페이드(공이 끝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휘는 구질) 샷을 익혀 강풍이 수시로 부는 데다 깊은 항아리 벙커가 도사린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를 공략하며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경주는 자기 절제와 식지 않는 열정으로 시니어 무대를 새로운 경지로 이끈 랑거를 “대단한 랑거 형님”이라 부르며 따라 한다. 양용은도 챔피언스 투어에서 함께 뛰는 71세의 제이 하스(미국)를 존경한다고 했다.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68타를 쳐 ‘에이지 슈트(age shoot·18홀 스코어가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것)’를 달성했다. “70 넘은 나이에도 대회 준비에 정성을 쏟고 자주 에이지 슈트를 하는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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