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의 항공 점프 슈트. 휴게소에서 파는 마스터스 명물 샌드위치는 1.5달러로 수년째 가격 변화가 없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사진 민학수 기자
제88회 마스터스를 비롯해 올 시즌 4승과 준우승 한 번을 한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28·미국)는 ‘도저히 가르칠 수 없다’는 독특한 스윙을 한다. 그런데 샷을 하는 대로 홀에 가깝게 붙인다. 샷할 때 두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데, 특히 스윙이 큰 드라이버 샷은 어드레스 때와 공을 치고 난 뒤 양발의 위치가 확연히 다르다.
왼발 앞쪽이 꺾이면서 뒤꿈치 바깥쪽만으로 버텨 양 발바닥의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보인다. ‘낚시꾼 스윙(fisherman swing)’ 으로 유명한 한국의 최호성을 보는 듯한데,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홈페이지에 두 선수의 스윙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올려놓기도 했다.
주니어 시절 부족한 비거리를 늘리려고 지면 반발력을 극대화하려다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평균 310야드의 장타 능력을 갖췄지만, 샷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발을 조금 덜 움직이는 아이언 샷의 정확성은 독보적인 1등이다. 손목 코킹을 줄이고 백스윙을 간결하게 해 임팩트 순간의 정확성을 높이는 게 비결이라고 한다.
하체를 단단히 고정하고 샷하라는 정통에서 크게 벗어난 ‘변칙 스윙’인데,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 어렵다는 오거스타의 유리알 그린을 정복하고 세계 최고의 골퍼로 공인받았을까.
1 제88회 마스터스 챔피언인 스코티 셰플러의 모든 샷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2 공식 대회 하루 전 열리는 파3 콘테스트에 김주형(오른쪽)의 캐디로 나 선 류준열. 사진 마스터스
모든 선수의 모든 샷, 마스터스 앱에서 볼 수 있어
TV 중계를 놓쳤더라도 그가 친 모든 샷을 마스터스 홈페이지(masters.com)와 마스터스 앱에서 볼 수 있다. 마스터스는 코스 전장 7555야드에서 벌어지는 모든 선수의 모든 샷을 영상에 담아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 누구나 마스터스 홈페이지와 앱을 통해 볼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하는 첨단 서비스를 한다. 출전 선수 100명 안팎의 ‘에브리 싱글 샷(Every Single Shot·모든 샷)’을 선택해서 보면 된다.
마스터스 팬에게 ‘모든 샷, 모든 홀(Every shot Every hole)’을 볼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은 2019년 대회부터 도입됐다. 이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엄청난 투자와 마스터스의 오랜 파트너인 미국 지상파 CBS와 IBM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다섯 번째 그린재킷을 입던 2019년 대회에서 나온 모든 선수의 2만2118개 샷이 마스터스 앱과 홈페이지를 통해 팬에게 전달되는 대변혁이 일어난 것. PGA투어가 2004년부터 샷 링크를 통해 모든 선수의 샷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18홀에 걸쳐 모든 선수의 샷을 동시에 영상으로 담는 것은 워낙 비용도 많이 들고 고난도 작업이 필요하다.
어떻게 가능할까.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8개 홀에는 모두 110개의 카메라가 배치돼 있다. 티잉 구역부터 페어웨이나 러프, 그린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동시에 촬영하기 위해 슈퍼볼 중계 수준의 인프라를 갖춰 놓았다. 촬영된 영상은 일단 오거스타 제작 본부에 전달된 후, 뉴욕과 애틀랜타, 영국에서 기본 편집을 한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상의 퀄리티를 올리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중계방송을 위한 고화질 영상과 앱을 위한 저화질 영상으로 나누어 오거스타로 보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런 작업이 5분에서 20분 이내에 마무리돼 모든 홀, 모든 샷의 마스터스 영상을 전 세계 팬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스터스는 이렇게 촬영한 모든 영상을 자료로 매일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제공한다. 그 작업을 IBM의 AI 프로그램인 왓슨이 맡아서 한다.
No 핸드폰 무관용 정책으로 ‘마스터스 디톡스’
이런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디지털 샷’의 향연을 펼치는 마스터스지만 핸드폰 반입을 철저히 금지하는 ‘노 핸드폰 정책(no cell phone policy)’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지키고 있다.
PGA투어 대회를 비롯해 다른 메이저 대회까지 하나둘 시대의 변화에 투항했지만, 마스터스는 단호하다. 실수로 핸드폰을 갖고 들어갔더라도 한 번 적발되면 평생 마스터스 입장을 금지당하는 무관용 정책을 펴고 있다.
대회를 주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전임 회장 빌리 페인은 2017년 질문을 받고는 “핸드폰은 선수와 팬 모두의 집중을 방해한다.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다. 현 회장 프레드 리들리는 “패트론(마스터스 관람객을 지칭하는 표현)은 우리 정책을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 정책에서도 아웃라이어(독특한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예외가 있기는 하다. 2010년 타이거 우즈가 연습라운드 도중 10번 홀 그린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동반 경기를 하던 마크 오메라는 “우즈는 퍼팅 스트로크를 돕기 위해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고 거들었다.
마스터스의 영웅이자 흥행 보증수표인 우즈를 잃고 싶지 않았던 듯 오거스타 내셔널은 “경기자가 연습 라운드 도중 촬영 목적으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예외로 한다”고 발표했다.
그럼 급한 연락은 어떻게 하나. 마스터스는 대회장 곳곳에 공중전화 부스처럼 무료로 유선전화를 걸 수 있도록 했다. 국제전화든 국내 전화든 모두 공짜다.
그럼 골프장에서 어떻게 만날 약속을 할까.
‘1번 홀 마스터스 스코어보드 옆’ ‘10번 홀 티잉 구역 근처’처럼 약속 장소를 정해 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지루할 시간은 없다.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는데도 마스터스가 ‘노 핸드폰 정책’을 배짱 좋게 지킬 수 있는 비결은 수요 공급의 비대칭성 덕분이기도 하다. 하루 2000달러 가까운 암표나 이차 판매 티켓을 사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팬이 줄을 서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하루 4만여 명의 마스터스 관람객이 ‘스마트폰 디톡스’를 경험하고 있다. 대회장에서 만난 이들은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는데, 막상 아무도 핸드폰이 없는 곳에 오니 오히려 없는 게 당연한 것 같다”고 했다. 스마트워치도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1934년 출범한 ‘명인 열전’ 마스터스는 시간이 갈수록 독보적인 골프 대회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여러 설문에서 PGA투어 선수가 가장 우승하고 싶어 하는 대회이자, 전 세계 골프 팬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대회로 우뚝 섰다. 마스터스가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 능력에서 모두 아웃라이어인 점도 이런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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