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시즌 개막전인 더 센트리에서 우승한 크리스 커크(39·미국)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극복한 의지의 골퍼다. 가혹할 정도로 치열한 PGA투어 경쟁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허물어졌지만, 자신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실을 공개하고는 가족의 사랑과 함께 다시 일어섰다.
커크는 1월 7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파73)에서 열린 더 센트리 최종 4라운드에서 8타를 줄이며 합계 29언더파 263타를 기록해 2위 사히스 티갈라(27·미국)를 1타 차로 제치고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PGA투어 우승자들과 플레이오프 50위 이내 59명이 참가한 이 대회는 PGA투어가 올해 도입한 시그니처 대회 8번(특급 대회) 중 하나다. 컷 탈락 없고 총상금 2000만달러에 우승 상금 360만달러가 걸려 있어 강호들이 대거 출전했다.
커크의 우승은 2023년 혼다 클래식 이후 11개월 만이었다. PGA투어를 통해 커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알코올 중독·우울증 치료차 투어 중단 후 8년 만의 우승
커크는 “올해 시즌 개막전 더 센트리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시즌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좋은 예감은 있었지만 29언더파라는 좋은 기록으로 우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그는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체육관에서 보냈다고 했다. “2024 시즌을 위해서 열심히 훈련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열심히 몸 관리를 할수록 강해지고 건강해진다고 느끼게 된다”고 했다.
커크가 열심히 운동하면 건강해진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혼다 클래식에서 무려 8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커크는 장신이면서도 날렵한 체격(191㎝·79㎏)으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유망주 였다. 조지아대 재학 시절 팀이 NCA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 이바지했고, 2007년 가장 뛰어난 대학 선수에게 주어지는 벤 호건 어워드를 받았다.
그해 프로로 전향한 커크는 2008년부터 세 시즌을 PGA 2부 투어에서 뛰고, 2011년 꿈에 그리던 PGA투어 무대를 밟았다. PGA투어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데뷔 첫해인 2011년 바이킹 클래식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고, 2013년 맥글래드리 클래식, 2014년 PGA 플레이오프 도이치뱅크 챔피언십, 2015년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을 차례로 제패했다. 5년 동안 4승을 거둔 그는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미국과 세계연합팀의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 미국 대표로 참가했다. 하지만 커크는 최고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에 지쳐갔다. 페덱스컵 2017년 92위, 2018년 66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세계랭킹이 2015년 16위까지 올랐으나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9년 5월 커크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PGA투어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충격 선언을 했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 속에 치료에 전념한 커크는 2020년 PGA 2부 투어인 콘페리투어에서 우승하며 재기를 알렸다. 지난해 PGA투어에서 우승한 그는 PGA투어 ‘커리지 어워드’를 수상했다.
커크는 “지난해 초부터 미국 프로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멘털 코치인 잭 소렌슨과 함께하면서 뇌의 작동 방식과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게 큰 도움을 줬다”고 털어놓았다.
“왼손으로 2연속 ‘파’, 정말 엄청난 일”
그는 흥미로운 방법으로 완벽주의에서 오는 과도한 긴장을 털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왼손 골프 게임’이다. 그의 말이다.
“나는 매년 12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왼손으로만 게임을 한다. 당연히 모두 엉망진창이다. 그냥 서로 놀리고 웃으려고 하는 게임이다. 내가 오른손으로 친 샷에 만족하려면 더 센트리 최종 라운드 17번 홀에서 5번 아이언으로 버디를 만들어 냈던 것만큼 잘 쳐야 한다. 하지만 왼손으로 친 샷이 페어웨이로 가거나 7번 아이언으로 친 샷이 그린에 올라가기만 해도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왼손으로 파를 연속 두 개 해내는 것도 정말 엄청난 일이다. 왼손으로 경기하는 것은 순수한 골프의 본질을 되살려 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 경기력에 대한 기대가 너무 낮아 오른손으로 경기하는 것보다 결과에 더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는 더 센트리 마지막 날 평정심을 유지한 것을 떠올렸다. “긴장을 많이 하면서도 최종 라운드에 65타를 치며 경기를 잘 해낸 것에 감사할 뿐이다. 대회 내내 평정심을 유지했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어떠한 감정을 느끼든 샷과 퍼트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고 계속 상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5번 아이언으로 쳤던 17번 홀을 포함하여 모든 샷을 하기 전에 떠올렸다.”
커크는 “한동안 골프를 떠났지만, 지금은 가장 사랑하는 골프와 경쟁을 즐기고 있다”며 “다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 골프장 밖에서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다”고 했다. “매 순간을 즐기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커크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알코올 중독 관련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알린 것을 꼽았다. 그의 말이다.
“알코올 중독 문제를 공개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골프 코스에서 성취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투어에 복귀하고 나서 이룬 모든 일이 알코올 중독 관련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나의 PGA투어 경력은 한참 전에 끝났을 것이다. 다시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싶지 않다.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 솔직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함께 책임이 따르는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이러한 자유를 느낀다.”
커크는 “개막전인 더 센트리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제 출발선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남은 시즌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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