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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때의 보비 존스사진 위키디피아

보비 존스가 애타게 고대하던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은 1923년 뉴욕 인우드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이뤄졌다.


갤러리에 대한 부담과 긴장 때문에 우승 문턱에서 무너져 내리던 ‘가난한 7년’을 끝내고 쉴 새 없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부유한 7년’을 맞이하는 순간도 쉽지 않았다.


2위를 줄곧 3타 차로 앞섰으나 마지막 3홀에서 보기, 보기, 더블보기로 4타를 잃으며 공동 선두를 허용했고 다음 날 18홀 연장 승부 끝에 1타 차로 간신히 승리했다. 당시 US오픈 연장전은 다음 날 18홀을 더 치르는 방식이었다.


고비를 넘자 새로운 세상이었다. 존스는 1930년 한 해에만 네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루며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 대회 13승(디오픈 3승, 브리티시 아마추어 선수권 1승, US오픈 4승, US 아마추어 선수권 5승)을 이뤄냈다.


월터 하겐, 진 사라센 등 당시 골프계를 주름잡던 프로 골퍼들이 도전했지만, 학교 공부와 변호사 일을 하며 방학을 이용해 틈틈이 골프를 하던 존스를 적어도 메이저 대회에서는 넘볼 수 없었다.


1 보비 존스가 1926년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 bobbyjones.com 홈페이지 2 1933년 고디 스포츠 킹스(Goudey Sport Kings) 카드. 3 보비 존스(오른쪽)와 부인 메리 존스사진 위키피디아


보비 존스의 골프 철학 ‘올드 맨 파’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스스로 허물어지던 골프 천재인 그를 세기의 승부사로 이끈 것은 지혜와 성찰로 가득한 그의 골프 철학 ‘올드 맨 파(Old Man Par)’ 덕분이었다. 


그는 올드 맨 파라는 가상의 경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기를 할 때 자신의 골프 상대는 다른 선수가 아니라 각 홀의 ‘파(par)’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 홀 파와 싸우다 보면 파도 잡고 어떤 때는 버디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골프 코스의 매 홀 기준 타수인 파를 친근한 존재로 의인화한 ‘올드 맨 파’와 함께하면서 존스는 동료 골퍼가 따라잡을 수 없는 초월적인 선수로 거듭났다. 


존스는 자서전 ‘페어웨이를 따라(Down the Fairway)’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누구도 골프를 자신의 아래에 두지 못할 것이다. 어떤 라운드도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골프가 가장 훌륭한 게임인 이유일 것이다. 당신은 인간을 상대로 경기하고 있지 않다. 당신은 게임을 경기하고 있다. 당신은 올드 맨 파와 게임을 하고 있다(No man will ever have golf under his thumb. No round will ever be so good it could not have been better. Perhaps that is why golf is the greatest of games. You are not playing a human adversary; you are playing a game. You are playing Old Man Par).”


“올드 맨 파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 경제학자다. 그를 친구이자 적으로 삼아라. 그러면 다른 이들은 당신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Old Man Par, the imperturbable economist! Make a friend and constant foe of him, and the other boys won’t be so rough on you).”


“올드 맨 파는 참을성 있는 영혼이다. 결코 버디를 쏘지도 않지만, 더블보기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그와 오랜 길을 함께 여행하고 싶다면 당신도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Old Man Par is a patient soul, who never shoots a birdie and never incurs a buzzard. And if you would travel the long route with him, you must be patient too).” 당시 파보다 2타를 더 치는 더블보기를 유럽의 대머리 독수리를 지칭하는 ‘버자드(Buzzard)’라고 쓰기도 했다.


근대 골프의 아버지 해리 바든에게 영감받아


존스가 올드 맨 파에 대한 영감을 갖게 된 것은 11세이던 1913년 US오픈이었다고 한다. 우아하면서도 힘찬 스윙으로 ‘스윙의 시인’이란 명성을 듣고 있던 영국의 해리 바든(Harry Vardon·1870~1937)은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오늘날 가장 많은 골퍼가 사용하는 오버래핑 그립을 창안해 근대 스윙의 기틀을 다진 근대 골프의 아버지였다. 현재 PGA투어는 그를 기려 한 시즌 평균 최저 타수(라운드 기준)를 친 선수에게 바든 트로피를 수여한다. 


당시 승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바든과 영국의 테드 레이(Ted Ray), 19세의 미국 아마추어 프랜시스 위멧(Francis Ouimet)이 연장전을 치러, 위멧이 승리했다. 


위멧이 열 살짜리 꼬마를 캐디로 데리고 자신의 우상인 바든을 이긴 동화 같은 이 실화는 ‘지상 최고의 게임(The Greatest Game ever played·2005년 작)’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우승은 못 했지만, 주변의 경쟁자나 갤러리를 의식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로 골프 코스와 대화를 나누듯 경기하는 바든은 존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존스가 남긴 명언들은 지금도 욕심과 불안에 짓눌려 경기를 망쳐버리기 일쑤인 골퍼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준다. 


“많은 샷이 스윙의 마지막 순간 불과 몇 야드를 더 보내려는 의욕 때문에 망친다(Many shots are spoiled at the last instant by efforts to add a few more yards).” 


“골프는 사람을 겸허하게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알지 못하거나 결과에 대해 무지한지 모른다(Golf is said to be an humbling game, but it is surprising how many people are either not aware of their weaknesses of else reckless of consequences).”


존스는 걱정을 떨쳐버리고 긴 호흡으로 올드 맨 파와 여행을 나설 것을 권했다. 


“만약 골퍼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경구나 슬로건이 있다면 긴장을 피하는 것이다. 그의 첫 자세는 가능한 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해야 한다(If there is a watchword or slogan that a golfer should always remember is to avoid tension. His first position should be as natural and comfortable as he can possibly make it).”


“한 번에 한 스트로크를 경기하는 것은 골프에서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깨닫는 데 수년이 걸렸다(It is nothing new or original to say that golf is played one stroke at a time. But it took me many years to realiz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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