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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우승 트로피와 기념 사진을 찍은 보비 존스사진 Bobby Jones CSF 홈페이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위대한 골퍼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여정에서 빚어져 나온 말을 살펴본다. 샷보다 더 빛나는 그들의 한마디는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운 골프의 등대가 된다. 상처받은 골퍼의 마음을 달래주고, 나태함과 유혹을 이겨내는 죽비가 된다.


골프는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게임에 가장 가까운 게임이다. 좋은 샷을 하고도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형편없는 샷을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볼이 어디에 떨어지든 공이 놓인 곳에서 경기해야 한다(Golf is the closest game to the game we call life. You get bad breaks from good shots; you get good breaks from bad shots–but you have to play the ball where it lies).”


애틀랜타의 오클랜드 묘지에 있는 보비 존스의 무덤, 퍼팅 그린, 골프공, 기념품들. 사진 위키피디아

골프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인생에 빗대 이렇게 설파한 보비 존스(Bobby Jones·미국·1902~71)는 1930년,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골퍼다. 최전성기였던 바로 그해 스물여덟 나이에 홀연 은퇴를 선언한 그는 현역 시절 경기를 통해 돈을 추구하지 않고 아마추어로 남았다. 그는 은퇴 후 ‘미국 골프의 성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1933년 개장)을 지었고, 그곳에서 1934년부터 마스터스(초기 공식 명칭은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셔널)를 열었다. 남자 골프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는 세상의 모든 골퍼가 가보고 싶어 하는 ‘명인 열전’이 됐다. 그는 골프 코스 설계와 골프클럽 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골프에 관한 명저들을 남겼고 골프 레슨 프로그램을 제작한 앞서가는 인물이었다.

골프의 성인(saint)이라 불렸던 그는 뛰어난 골프 실력 못지않게 골프의 희로애락을 재치 있는 언어로 절묘하게 잡아낸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했다. “골프 경기는 주로 두 귀 사이 5.5인치 코스에서 벌어진다(Competitive golf is played mainly on a five-and-a-half-inch course… the space between your ears).” “골프는 구력이 오래될수록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유일한 게임이다(Golf is the only game I know of that actually becomes harder the longer you play it).” 그는 골프가 결국 마음가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지독한 멘털 스포츠이자, 한 뼘의 성장을 위해 거꾸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길 마다하지 않는 집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 보비 존스를 기리는 조지아공대의 명판. 사진 위키피디아 2 1919년 뉴올리언스 서던 오픈에 참가한 보비 존스사진 위키피디아 3 1981년 미국에서 발행한 보비 존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우표. 사진 셔터스톡

본명이 로버트 타이어 존스 주니어(Robert Tyre Jones Jr.)인 그는 1902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집은 지역의 최고 명문 골프장인 이스트레이크 컨트리클럽 13번 홀 그린 옆에 있었다. 이스트레이크 컨트리클럽은 매년 미 PGA투어의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이 열리는 곳이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였다. 그의 아버지가 1907년 집에서 가까운 이스트레이크 골프클럽의 멤버가 되면서 골프는 존스의 운명이 됐다. 어린 시절 병치레가 잦았던 존스에게 아버지는 골프를 권했다. 부친의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5번 우드가 존스의 첫 번째 클럽이었다. 소년은 스코틀랜드 커누스티 출신으로 이스트레이크의 클럽 프로였던 스튜어트 메이든을 졸졸 따라다니고 그의 스윙을 ‘원숭이처럼 흉내 내면서’ 골프를 익혔다. 메이든은 꼬마 존스에게 맞춤 클럽을 처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골프 신동이었다. 그는 한 번도 정식으로 골프 레슨을 받지 않았지만 9세에 16세의 경쟁자를 제치고 애틀랜타 주니어 타이틀을 차지했고, 14세에는 이스트레이크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해 조지아주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 남부 출신의 골프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멋지게 생긴 청년은 골프계의 스타로 성장했다. “적게 생각할수록 더 좋은 스윙을 할 수 있다(You swing your best when you have the fewest things to think about)” “골프의 목적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The object of golf is to beat someone. Make sure that someone is not yourself)”고 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였던 존스는 경기장에서 그를 지켜보는 팬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라운드를 마치고 나면 몇㎏씩 몸무게가 빠졌다. 존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골프 칼럼니스트 O. B. 켈러는 존스의 선수 시절을 ‘가난한 7년, 부유한 7년’으로 나눈다. 존스는 현역 시절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1916년에서 1922년까지 단 한 차례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열아홉 살이던 1921년 디오픈 참가를 위해 처음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찾은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치욕적인 경험을 한다. 3라운드 전반 9홀을 46타로 끝내고 파4 10번 홀 더블 보기에 이어 11번 홀 ‘지옥 벙커’에 볼을 빠뜨리고는 자신의 볼을 집어 들고 경기를 포기했다. 스코어 카드도 찢어버렸다. “내가 도대체 우승이라는 걸 해보기는 할까?”라고 한탄하는 그를 보고 영국 언론은 “골프의 명인이라던 보비 존스가 사실은 아직 어린애였다”고 꼬집었다.

패배는 오히려 그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내가 이긴 경기에서 배운 것은 없었다(I never learned anything from a match I won)”고 했고, “비즈니스와 골프의 비결은 세 번에 성공하던 샷을 두 번에 해내는 것(The secret to golf, and business, is to turn three shots into two)”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물한 살이던 1923년 US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선수로서 가장 화려했던 ‘부유한 7년’의 막을 올린다. 존스는 당시 4대 메이저 대회였던 US오픈과 US 아마추어선수권, 영국의 디오픈과 브리티시아마추어 선수권에 31번 참가해 13번 우승했다. 톱10에 든 건 27차례. 메이저 우승 확률 41%, 톱10 마무리 87%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 메이저 11승의 월터 하겐과 메이저 7승의 진 사라센 등이 존스가 활동하던 시기의 대표적인 프로 골퍼였으나 그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존스가 골프 선수로 활동하면서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을,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에모리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얻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 문학, 고대 문화사, 비교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시리즈 2편에서는 존스를 20세기 최고의 승부사로 거듭나게 한 비결과 그의 통찰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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