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비거리로 하는 게 아니다. 체격이나 이름값도 아니다. 키 170㎝ 브라이언 하먼(36·미국)이 남자 골프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디오픈에서 그걸 보여줬다. 그는 세계 랭킹 26위로 대회 전 우승 확률이 0.8%였던 선수. 마지막 골프 대회 우승도 6년 전. 그를 주목한 전문가는 없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24일 영국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파71)에서 막을 내린 151회 디오픈(총상금 1650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합계 13언더파 271타를 기록하며 6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날 버디 4개·보기 3개로 1타를 더 줄였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6언더파 공동 6위)나 욘 람(29·스페인·7언더파 공동 2위) 추격을 뿌리치고 클라레저그(은주전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골프는 심장으로, 실패를 차곡차곡 쌓아 성공으로 바꾸는 용기로 하는 것이란 금언을 증명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이던 메이저 우승을 드디어 이뤘다”면서도 “스마트폰을 꺼놓고 집에 사놓은 트랙터를 타고 사냥터 땅을 갈러 나가겠다”고 소감을 말해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김주형(21)은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4개, 보기 2개로 4타를 줄여 전날 공동 11위에서 공동 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는 1라운드를 마친 뒤 숙소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으나 “아드레날린이 솟아 아픈 줄도 모르고 경기했다”면서 웃었다. 2007년 최경주가 기록한 한국 선수 디오픈 역대 최고 성적 공동 8위를 뛰어넘었다. 람을 비롯, 제이슨 데이(36·호주), 제프 슈트라카(30·오스트리아)가 2위에 이름을 함께 올렸다.
김주형 /EPA 연합뉴스
4라운드를 시작할 때 그는 5타 차 앞선 1위였다. 여유로울 듯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하먼은 2017년 US오픈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1타 차 앞선 1위로 출발했다. 그러나 브룩스 켑카(33·미국)에게 덜미를 잡혀 공동 2위로 아쉬움을 삼켰다. 그는 당시 “원래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스타일인데 그 뒤로는 할 수만 있다면 눈앞 샷만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엔 달랐다. 2번(파4)과 5번 홀(파5)에서 보기를 했지만 6·7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았다. 13번 홀(파3)에서 2m 파 퍼트를 놓쳐 보기를 하고는 14번 홀(파4)에서 12m 버디 퍼트에 성공하고 15번 홀(파5)에서 또 버디를 잡아 승부를 결정지었다. 팬들 야유가 커질수록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대회에서 하먼은 평균 비거리 283야드로 출전 선수 156명 중 126위였다. 그러나 3m 이내 퍼트는 59번 가운데 58번을 성공했다.
하먼이 디오픈 이전에 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건 6년 2개월 전이다. 지금까지 메이저 대회 우승은 없었다. 12년간 PGA 투어에서 뛰면서 2014년 7월 존 디어 클래식, 2017년 5월 웰스 파고 챔피언십 우승이 전부다. 그럼에도 2017년 이후 이 대회 전까지 PGA 투어에서 ‘톱10′을 29번 기록했다. 이 기간 우승 없이 톱10을 하먼만큼 많이 기록한 선수도 없었다. 이제 그 불운도 끝냈다.
그는 공식 키가 170㎝라 밝혔지만 굽 있는 신발을 신고 잰 키라고 한다. 실제론 160㎝대라는 얘기다. 이번 우승으로 하먼은 디오픈에서 우승한 세 번째 왼손잡이 골퍼가 됐다. 다른 2명은 1963년 밥 찰스(뉴질랜드), 2013년 필 미켈슨(미국)이다. 하먼은 오른손잡이지만 골프만 왼손으로 한다. 어린 시절 야구를 좋아했는데 우투좌타(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타격)였던 영향을 받았다. 지난 마스터스에서는 컷 탈락 뒤 사냥을 나가 칠면조와 돼지를 잡았다. 취미가 사냥인데 활을 사용하고 어린 짐승은 잡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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