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준우승 3번 최예림과 준우승 4번 이가영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버치힐CC에서 열린 '맥콜-모나파크 with SBS Golf' 1라운드 10번홀에서 이가영이 아이언샷을 하고 있다. /KLPGA
승부를 가리는 게 숙명인 스포츠 중에서도 골프만큼 1위와 나머지 선수들로 갈라지는 종목도 없다. 100여 명이 출전해 단 1명을 가려내고는 상금과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준다. 우승에 불과 1타 뒤진 2등인데도 준우승이 여러 번 되풀이되면 언젠가 “새가슴” 꼬리표까지 따라붙는다. 그런 점에서 골프는 잔혹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최근 ‘2등 전문가’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붙은 선수들이 있다.
“지난해 (고)진영 언니가 LPGA 투어에서 우승할 때 내가 꽃다발을 갖다주는 꿈을 미리 꾼 적이 있어요. 그래서 미리 우승할 거라 짐작했었지요. 이제 제가 우승하는 꿈도 꾸어보고 싶네요.”
지난 7일 KLPGA 투어 데뷔 5년 만에 첫 우승 기회를 잡았다가 놓친 최예림(23)은 10일 통화에서 아직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은 듯 이렇게 이야기하다 웃었다. 그는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대회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우승을 바라보다 마지막 4홀에서 4연속 버디를 잡은 지한솔(26)에게 1타 차로 역전패당했다. 2018년과 2019년에 이어 세 번째 준우승이었다.
“한솔 언니가 잘 쳐서 우승한 것은 축하하지만 ‘왜 하필 내가 기회를 잡았을 때 이런 일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최예림은 2018년 데뷔 이후 114경기를 뛰면서 준우승 3차례를 포함해 10위 안에 21번 들었다. 그는 1부 투어에서 11억원이 넘는 상금을 벌어들였지만, 아직 마침표를 찍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최예림은 거듭된 실패에도 예전과 다르다고 했다.
“지난 겨울 전지훈련 때 아이언 샷과 퍼트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경기력에 자신이 생겼다”며 “예전엔 이기고 있어도 언제 실수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제는 내 경기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가영(23)은 최예림보다 적은 89경기를 뛰면서 네 차례 준우승했다. 10위 이내 성적을 거둔 것도 22번이나 된다. 지난 봄에는 2주 연속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4년간 벌어들인 상금만 12억원이 넘는다. 말 그대로 우승 빼고는 다 해봤다.
아마추어 시절 뛰어난 실력을 보이던 이가영이 프로 무대에서 아직 승수를 쌓지 못하자 “너무 순하고 승리욕이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티샷부터 퍼팅까지 전체적인 경기력은 KLPGA 투어 정상급으로 꼽히는 이가영은 “10위 안에 꾸준히 들고, 한 샷 한 샷 집중해서 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한때 준우승 전문가였던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샷을 하기 전 씩 웃어 보이는 ‘미소 루틴’으로 세계 1위에 올랐고, 최나연(34)도 경기 중 하늘을 바라보거나 갤러리의 옷 색깔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긴장감을 떨쳐 효과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가영은 “우승에 지나치게 조바심 내기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가영이나 최예림처럼 꾸준히 성적을 내는 선수는 곧 우승할 실력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KLPGA 투어에서 최다 준우승 기록을 보유한 이는 정일미(50·호서대 교수)다. 그는 8승을 거두는 동안 무려 21번 준우승했다. 시니어 투어에서도 맹활약하는 정일미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실력 있는 선수는 언젠가 꼭 우승한다”고 했다. 전혀 우승 기회를 놓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장하나(30)도 15승을 올리는 동안 준우승을 19번이나 했다. 메이저 대회 18승으로 최다승 기록을 가진 잭 니클라우스도 메이저 대회 준우승을 19번이나 했다. 장하나는 “골프에선 준우승도 실패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상으로 가는 소중한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스포츠 심리학자 밥 로텔라(미국) 박사는 “골프에는 15번째 클럽이 있다. 자신감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가장 귀한 보물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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