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홀 매치플레이서 압도적 경기… 경기전 디섐보 도발에도 버디 5개
지난 3년간 노골적 말다툼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대표적 앙숙으로 떠오른 브룩스 켑카(31·미국)와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 사이에 라이벌이란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이 주요 대회 타이틀을 놓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만나 모든 걸 걸고 싸워본 적도 없고 누가 먼저 대기록을 달성하느냐를 놓고 경합한 적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20여 년간 정상의 자리를 놓고 격돌한 데다 흑인과 백인,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골퍼 등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타이거 우즈(미국)와 필 미켈슨(미국)의 라이벌 구도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는 없다. 그래도 둘 다 근육질 장타자에 정상급 골퍼인 ‘수퍼맨’ 켑카와 ‘헐크’ 디섐보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서로 약 올리고 빈정대는 모습은 디즈니 만화의 ‘톰과 제리’처럼 유치하면서도 직설적이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말 펀치만 주고받지 말고 한번 골프 실력으로 붙어보라’고 멍석을 깔아준 게 2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윈 골프클럽에서 열린 방송용 이벤트 ‘캐피털 원스 더 매치’ 일대일 대결이었다. 캐피털 원스 더 매치는 처음엔 우즈와 미켈슨의 일대일 매치 플레이로 시작돼, 타 종목 스타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다양한 구성으로 열려왔다.
이번 대회는 경기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18홀이 아닌 12홀 매치 플레이로 열렸다. 뚜껑을 열어보니 몸집만 더 불린 ‘헐크’는 작정을 하고 나온 ‘수퍼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켑카는 9번 홀까지 융단 폭격하듯 버디 5개를 뽑아내며 4홀 차 승리를 거둬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날 둘은 마이크를 부착하고 경기했다. 미켈슨은 해설자로 나섰다. 디섐보가 빛난 순간은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였다. 그는 1번 홀 티잉 구역에 컵 케이크를 들고 올라와 팬들에게 나눠주며 켑카를 도발했다. 컵 케이크는 발음이 비슷한 켑카를 놀리려는 의도였다. 컵 케이크에는 인상 쓰고 있는 켑카의 얼굴 사진까지 붙였다. 이 사진은 지난해 한 대회에서 켑카가 방송 인터뷰를 하던 도중 쇠 징을 박은 골프화를 신은 디섐보가 시끄럽게 지나가자 “하던 말을 잊어버렸다”며 짜증을 낼 때의 모습이었다.
디섐보의 도발에 켑카는 버디 폭탄으로 응수했다. 2· 5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켑카는 6번 홀(파3)에서 3m 버디를 추가했다. 그는 이 홀에 걸린 니어핀 대결에서 승리해 불우 이웃 50만명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무료 음식을 제공하게 됐다. 켑카는 8번 홀 1m 버디에 이어 9번 홀 (파3)에서도 티샷을 3m 거리에 붙였다. 디섐보가 백기 투항하듯 버디 컨시드를 주면서 승부는 막을 내렸다. 최근 두 달가량 실전 대회에 나서지 않았던 디섐보는 샷의 정확성이 크게 떨어져 한 홀도 얻지 못했다. 방송 리포터가 디섐보와 가까운 관계가 될 건지 묻자, 켑카는 “그를 혼내주고 싶었다. 그와 친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디섐보는 “내가 잘해야 했다. 다음에 다시 기회를 주면 좋겠다”며 풀 죽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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