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타이거 우즈. 브룩스 켑카. |
영화에서 수퍼맨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변하기 전엔 따분하고 평범한 인물로 나온다.
'필드의 수퍼맨'이란 별명을 지닌 브룩스 켑카(29·미국)도 비슷한 캐릭터다. 그는 클럽을 쥐면 우람한 팔뚝을 드러낸 채 350야드짜리 장타를 날리며 골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지난 5월20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시즌 두번째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을 2연패하며 최근 8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4개를 우승했다. 4개 메이저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했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3·미국) 이후 처음으로 필드를 압도하는 실력이다.
그런데 평소 말하고 행동하는 걸 보면 카리스마와는 동떨어진 따분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US오픈을 2연패하고도 한동안 그의 기자회견 고정 레퍼토리는 "난 실력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불만을 몇번이고 늘어 놓는 것이었다.
일부에선 이런 켑카의 행동이 주변의 부정적 시선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켑카에게선 골프 코스에서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장에서까지 분위기를 압도하던 우즈의 카리스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PGA챔피언십 마지막 날 아침 여자친구가 행운의 키스를 해주려고 하자 우연히 만난 동료와 주먹을 부딪히는 척 하며 슬그머니 피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낭만이나 멋과는 거리가 멀다. 승부에 필요한 자신의 루틴에 충실하자는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골프 세상의 보스는 수퍼맨이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는지 철저히 연구하고 따라하지 않는다면 그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주말 골퍼들도 '골프 잘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소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의 골프는 엄청나게 멀리 똑바로 날아가는 드라이버 샷으로 시작한다. 전장이 길면서도 페어웨이가 개미허리처럼 좁은 메이저 대회에서 그가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는 비결은 바로 이 '수퍼맨 드라이버 샷'이다. 그리고 우드와 아이언 샷도 모두 멀리 똑바로 친다. 기본 구질만 9개를 갖추고 있다는 우즈처럼 다양한 샷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샷은 다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페이드 샷을 구사하는 켑카는 "다양한 샷을 하면 좋겠지만 실전에서 안전하게 반복할 수 있는 샷만 갖고 있어도 충분하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파워 골프에는 '선(先)체력 후(後)기술'의 원칙이 깔려 있다.
켑카는 대회가 없을 땐 하루 4~5시간씩 체육관에서 몸을 만든다. 메이저 대회가 있을 때도 하루 90분씩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운동 프로그램은 전문 트레이너가 짜준 것으로 다음과 같다. 15~20분간 고정식 자전거 타고 웜업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벤치 프레스, 팔근육 운동, 복근 운동, 하체 운동, 유산소 운동이 이어진다.
이런 켑카의 운동 프로그램은 야구, 축구, 미식축구 등의 엘리트 선수들이 하는 강도 높은 수준이다. 단순히 근육 사이즈를 키우는 게 아니라 운동 수행 능력 향상과 부상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켑카는 "쉬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아프지만 매일 하면 아프지 않다"고 한다. 켑카는 메이저 대회 때는 트레이너와 음식을 조절하는 개인 셰프까지 합류해 최상의 몸을 유지한다.
이렇게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몸을 만들고 필드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장타를 때려내는 것이다.
여기에 켑카는 '수퍼맨 마인드'라고 해도 좋을 마인드 컨트롤의 고수이다. 그는 "코스에서 특별히 하는 생각이 없다. 공을 보고, 잘 치고, 공을 찾아 다시 치는 것뿐이다. 단순하다. 원시인 골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골퍼들이 비싼 돈을 들여 멘털 트레이닝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마인드를 갖기 위해서다. 켑카는 "나는 심리학자가 필요없다. 나는 이런 부분을 꽤 잘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켑카처럼 메이저 8개 대회를 치르면서 4개 대회를 우승한 선수는 벤 호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밖에 없었다. 모두 골프의 전설들이고 일반 대회에서도 메이저 대회의 몇곱절을 우승했다. 우즈만 해도 PGA투어 81승 가운데 메이저 대회 15승이다. 그런데 켑카는 6승 가운데 4승이 메이저다.
켑카는 "메이저 대회가 가장 우승하기 쉬운 대회"라고 했다. "다른 선수들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무너지기 때문에 우승하기 위해 뭘 하려고 들지 말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메이저 대회가 가장 우승하기 쉽다는 말을 하는 것"이란 논리를 편다. 그래임 맥도웰(북아일랜드)은 "예전에 켑카가 뭐라고 해도 귀담아 듣는 골퍼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때다"라고 말했다. 맥도웰은 "몸 만들기에 공 들이고 승부에 강한 멘털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즈와 가장 닮은 골퍼는 켑카"라고 했다.
1990년대 우즈가 등장하며 바꿔 놓은 골프의 모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압축한 골퍼가 켑카라는 것이다.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 우즈는 '스포츠 사상 가장 위대한 재기'라고 불리는 드라마를 썼다.
허리 부상에서 복귀한 우즈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지금 같은 기량을 보여줄지 미지수다. 그래서 우즈와 켑카가 앞으로 펼치는 대결은 '특별 한정판'처럼 흥미롭고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오는 6월 13일 개막하는 US오픈은 메이저 16승에 도전하는 '골프황제' 우즈와 대회 3연패를 노리는 '수퍼맨' 켑카의 대결로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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