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US여자오픈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지난해 챔피언 박성현을 소개하는 멋진 소개 포스터가 있었다. |
올해 퍼팅난조로 크게 고전 퍼터 바꾸고 자세도 바꾸지만 라운드당 퍼트수 30개 넘어 아이언샷과 쇼트게임까지
경기 운영 전체에 불안감 도미노
"모자를 눌러쓴 그가 공을 응시한다. 완벽한 자세로 샷을 날린다. 얼굴엔 미소도 없다. 그저 '닥치고 공격’할 뿐이다."(골프 다이제스트)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성현은 세계 여자골프의 주인공이 됐고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국내 투어 시절 박성현의 별명 중 하나이던 ‘‘닥공(닥치고 공격)’이란 말을 LPGA와 미국 주요 언론들이 그대로 사용했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이 'Dak Gong'이란 별명과 그 뜻을 전했다. 미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닷컴은 "이날만 버디 6개를 잡아낸 박성현은 '닥공'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전했다.
외국 기자들은 'Dak Gong(닥공)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박성현의 통역이 'Just shut up and attack(그냥 입 닥치고 공격하라)'이란 뜻이라고 전달해 웃음바다가 됐던 일화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2일 미국 앨라배마주 쇼얼크리크 골프장(파72·6689야드). 박성현은 영광의 무대였던 US여자오픈에서 자신의 메이저대회 첫 컬탈락이란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골프는 정말 알 수 없다.
박성현은 1라운드에서 4오버파(버디 4개, 보기 4개, 더블보기 2개), 2라운드에서 5오버파(버디 2개, 보기 5개, 더블보기 1개)를 기록해 2라운드 합계 9오버파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천둥 번개로 지연돼 여러 선수들이 2라운드를 마치지 못했지만 박성현의 성적은 100위권을 벗어나 있어 다른 선수들 결과와 상관없이 컷탈락이 확정됐다.
박성현은 LPGA투어 메이저 대회 11경기만에 첫 컬탈락을 기록했다. 최근 볼빅 챔피언십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컷탈락이다. 2개 대회 연속 컷탈락도 처음이다.
'닥공’ 박성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올해 박성현은 퍼팅 난조로 고전하고 있다. 이날도 퍼트수 33개를 기록했다. 1라운드 퍼트 수는 30개 였다. 파5홀에서 2온에 성공하고 3퍼트를 해 파를 하기도 했다. 박성현은 지난 대회에 이어 뒷부분이 뭉툭한 말렛형 퍼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퍼팅 라인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퍼팅 스트로크도 자신없어 하는 모습이 잦았다.
아이언 샷 정확성도 크게 떨어져 이틀 동안 워터 해저드와 벙커에 수시로 샷이 떨어졌다. 정상권 선수가 2라운드 동안 더블보기를 3개와 보기 9개를 기록하는 것은 컨디션 난조로만 설명할 수 없다.
박성현의 플레이 스타일과도 관계있다. 우선 컷을 통과하자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경기를 풀어보려다 무너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장타의 이점을 앞세워 스코어를 줄이던 파5홀에서 오히려 스코어를 잃은 것도 이런 샷 난조와 무리한 코스 공략이 더해지면서 일어났다. 박성현은 이날 파5홀에서 1개의 버디도 잡지 못하고 오히려 3타를 잃었다.
볼빅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한 뒤 US여자오픈 현장으로 일찍 오지 않아 제대로 연습라운드를 할 기회가 없었던 점도 아쉽긴 했지만 그런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이번 대회에 앞서 허리케인 영향으로 연습라운드를 거의 하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올 시즌 박성현은 1승을 거두긴 했으나 심상치 않은 성적 곡선을 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 3개 대회에서 톱10에 한 번도 입상하지 못하더니 3월 기아클래식에서는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컷 통과에 실패했다. LA오픈과 볼빅챔피언십에서도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달 텍사스오픈에서 시즌 첫 우승을 신고하긴 했지만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 당시 대회는 날씨 탓에 파행을 겪다 2라운드로 축소됐다.
박성현은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은 물론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까지 휩쓸었다. 신인이 올해의 선수에 오른 건 1978년 낸시 로페즈 이후 처음이었다. 잠시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그런데 올해는 신통치 않다. 올 시즌 박성현의 가장 큰 문제는 퍼트 불안이다. 그린 적중시 평균 퍼트 수는 1.79타. 투어 순위 30위로 그런 대로 무난하다. 그런데 라운드 당 평균 퍼트 수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30.29타로 전체 100위다. 시즌 초반에는 라운드 당 퍼트 수가 31타를 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라운드 당 평균 29.54타였다.
규정 타수 만에 공을 그린에 올렸을 때는 무난하게 퍼트를 했지만 정작 그린을 놓쳤을 때 1퍼트로 막지 못하는 횟수가 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퍼팅과 그린 주변 플레이의 날카로움이 동시에 하락했다고도 분석할 수 있다.
퍼팅 난조는 정상급 선수도 금세 평범하거나 그 이하 선수로 바꿔 놓는다. 퍼팅에 자신을 잃으면 더 정확한 샷으로 홀에 공을 가깝게 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아이언샷의 난조로 이어진다. 또 티샷부터 공을 멀리치지 않으면 버디를 잡을 기회가 없다는 쫓기는 마음이 들게 된다. 퍼팅 불안이 경기 전체에 불안감을 도미노처럼 확산 시키는 것이다.
박성현이 이번 대회에 보여준 무리한 샷들도 이와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 쇼트 게임 능력도 불안해 보였다.
박성현은 스윙 코치가 없다. 가끔 투어를 함께 다니는 어머니가 샷을 봐준다. 지난해 LPGA투어 진출 초기 양용은과 김미현등과 함께 했던 유명 코치를 소개받았지만 몇차례 해보지 않고 결별했던 일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엄청난 기록을 쏟아내며 LPGA 최정상급 선수가 됐다.
올해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박성현이 슬럼프에 빠질 것으로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는 여러차례 부진을 남다른 방식으로 돌파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독특함을 넘어선
기행처럼도 보인다.
그의 별명 ‘남달라’는 그가 부진을 극복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박성현의 트레이드마크는 장타다. 그런데 처음부터 장타를 날렸던 게 아니다. 박성현은 공교롭게도 입스(샷을 하기 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각종 불안한 증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타자로 탈바꿈했다. 박성현은 고교 2학년 때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심리적 불안이 생겼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OB(아웃오브바운스)부터 걱정해야 했다. 그렇다고 살살 치면 더욱 샷이 되지 않았다. 2014년 한화금융 클래식 3라운드 때는 한 홀에서 OB 3방을 낸 적도 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심리 코치를 둘 수 없었던 박성현은 샷이야 어떻게 되든 더욱 세게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스는 심리적인 문제이므로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필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풀었다. 2부 투어 시절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남들 시선은 신경쓰지 않았다. 박성현은 결국 입스를 극복했고 장타 능력까지 얻었다.
박성현은 최근 퍼터를 바꾸기도 하고, 자세에도 변화를 주면서 분위기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드라이버 입스를 극복했던 것처럼 약점이던 퍼팅에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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