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골프가 시작됩니다~. 소리 질러! 여러분, 브라이슨 디섐보입니다!”
장내 아나운서 소개와 함께 귓전을 때리는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 소리가 골프장에 울려 퍼졌다. 메이저 대회 US오픈에서 두 차례 우승한 골프 스타 디섐보가 힘찬 티샷을 날렸다. 평일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도 많은 팬이 골프장을 찾아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환호성을 올렸다. 2015년 열렸던 미국과 세계연합팀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을 비롯해 매년 국내외 골프 대회가 열리는 인천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이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조용히’라는 팻말 대신 아나운서는 환호성을 더 올리도록 갤러리를 유도했고, 10~30대 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Don’t Blink(눈 깜빡할 새도 없다)” “Golf, but Louder(골프지만, 더 시끄럽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22년 출범한 LIV 골프가 2일 한국에서 처음 막을 올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주도하는 LIV 골프는 출범 초부터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대거 접목한 ‘대안 골프’를 선언했다. 빠른 템포 클럽 음악이 1번 홀을 비롯해 대회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54명의 선수가 18개 홀에서 동시에 출발했다. LIV 골프는 모든 선수가 동일한 조건에서 경기한다는 원칙 아래 ‘샷 건(동시 출발)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이날 LIV 골프가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까지 엄청난 계약금을 주고 영입한 디섐보와 필 미켈슨,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 버바 왓슨(이상 미국), 욘 람, 세르히오 가르시아(이상 스페인), 호아킨 니만(칠레)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등장했다.
디섐보와 미켈슨, 가르시아가 동반 플레이를 펼친 조에는 가장 많은 팬이 모여 열광했다. 지난해 US오픈에서 우승하고 지난달 마스터스에서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우승 경쟁을 벌였던 디섐보는 이번이 첫 한국 대회 참가. 최대 357야드의 장타쇼를 선보이며 보기 없이 버디 7개를 잡아 7언더파 65타로 테일러 구치(미국)와 공동 선두에 올랐다. 디섐보는 “한국에서 팬들에게 1000번 넘게 사인을 해드렸다”며 “이렇게 많은 팬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장거리 여행(지난주 대회 멕시코)을 하고도 신바람이 나서 경기했다”고 했다. 그는 홀을 이동할 때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골프 선수이자 엔터테이너로서 글로벌 차원에서 골프 인기를 높이고 젊은 세대에게 골프를 전파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벌크업을 중단한 이후에도 장타를 날리는 비결로는 ‘주 3회 스피드 훈련’을 꼽았다. “비밀이지만 밝히겠다. 드라이버 샷 볼 스피드 200마일을 유지하기 위해 주 3회 100개 이상씩 스피드 훈련을 한다”고 밝혔다.
축구 스타 이동국을 비롯해 배우 박서준, 가수 이적, 개그맨 박준형 등 스포츠와 연예계 인사들도 많았다. 이들은 “이렇게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했다. 갤러리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20대 여성 팬은 “다른 대회장보다 젊은 팬들이 많이 찾아오신 것 같다”며 “선수들 경기에 방해될까 긴장하는 것보다는 노래도 크게 나오고 함성도 지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훨씬 자유롭게 경기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컷 탈락이 없어서인지 느슨해 보이고 설렁설렁 치는 것 같다”고 지적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파3홀인 8번 홀에서는 DJ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졌다. 8번 홀 근처 팬 빌리지에는 키즈존과 각종 게임장, K푸드를 앞세운 식음료 코너 등이 마련됐다.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 투어)에서 뛰다 이번 대회에 대체 선수로 출전한 김민규는 “홀마다 음악이 들리는 게 가장 달랐고, 각 팀 주장을 모아 놓은 2개 조 외에는 같은 팀 선수끼리 1라운드를 출발하도록 해 팀을 위하는 마음으로 경기한 것도 좋았다”고 했다. 김민규는 공동 9위(3언더파)로 출발했다. 한국 국적 선수로는 처음 LIV 골프에 진출한 장유빈은 11번 홀(파4)에서 기준 타수보다 6타를 더 치는 섹스튜플 보기를 범하며 4오버파 공동 49위로 부진했다. 재미 교포 앤서니 김이 꼴찌인 54위(7오버파)였다.
LIV 골프는 천문학적 상금과 스카우트 비용을 쓰지만 이렇다 할 중계권 수입과 스폰서 계약 등 안정적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2년 전 합병을 선언한 PGA투어와도 여전히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컷 탈락 없는 3라운드 54홀 경기 방식으로 세계 랭킹 포인트를 전혀 얻지 못하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LIV 골프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개인전 우승 상금 400만달러, 단체전 우승 상금은 300만달러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우승하면 475만달러(약 68억원)를 손에 쥐게 된다. 대회 마지막 날인 4일에는 지드래곤, 아이브, 다이나믹 듀오, 거미, 키키 등이 출연하는 콘서트가 대회장에서 열린다. 티켓은 쿠팡 와우회원(유료 멤버십)만 예매 가능하며, 일반 그라운드 티켓 기준 최종 라운드 15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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