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의 탐욕이 역겹다”
“왜 사우디 인권문제 신경써야 하나”
발언에 동료들 거센 반발하자 사과
“당분간 골프 떠나 자성 시간 갖겠다”
미켈슨 백기, 디섐보 등 불참 의사
사우디의 수퍼골프리그 무산 위기
“골프 발전을 위한 진심과 달리 경솔한 발언으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 당분간 골프를 떠나 자성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45승, 지난해 메이저 대회 사상 첫 50대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던 필 미켈슨(52·미국)이 2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530단어에 이르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 2008년부터 14년간 미켈슨의 메인 후원사였던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 KPMG는 이날 “미켈슨과 합의로 후원 계약을 즉시 종료한다”고 밝혔다. 후원사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것은 프로 골퍼 이미지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쇼트 게임의 마법사’라 불리고 팬 친화적인 태도로 사랑을 받던 미켈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재앙은 입에서 시작됐다. 지난 3일 미켈슨은 아시안 투어 대회인 사우디 인터내셔널 대회 기자회견에서 “PGA 투어의 탐욕이 역겹다. PGA 투어가 선수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또 “PGA 투어가 수퍼골프리그의 출범을 막고 싶다면 선수의 초상권과 방송 중계권 등 선수와 관련된 미디어 권리를 선수에게 돌려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거센 역풍을 불렀다. 미켈슨이 언급한 수퍼골프리그(SGL)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올해나 내년 초 출범시키려는 골프 투어다. 남자 골퍼 톱스타 48명만 참가하는데도 총상금 2000만달러(우승 상금 400만달러)의 파격적인 상금을 주는 대회 18개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소유한 골프장 등 14곳에서 대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자칫 PGA 투어는 톱스타들이 빠진 2부 투어로 전락할 수도 있다. PGA 투어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수퍼골프리그에 참가하는 선수는 영구 제명하겠다”며 결사 항전 의지를 밝혔다. PGA 투어 상금을 대폭 증액하고 새로운 보너스 제도를 만드는 등 대책을 세우는 와중에 미켈슨이 비수를 꽂은 것이다.
지난해부터 공공연하게 수퍼골프리그와 접촉하며 거액의 계약금을 받을 것으로 알려진 미켈슨이 ‘선 넘은’ 발언을 하자 미국 미디어와 동료 선수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AP 칼럼니스트 짐 러스키는 “PGA 투어 덕분에 8억달러의 자산을 쌓은 미켈슨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정말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다. 그가 PGA 투어에서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우디가 그렇게 좋다면 가라고 해라. 아무도 안 말린다”고 했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그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무지하다”고 비난했다.
미켈슨은 숨을 죽였지만 지난 18일 사태에 휘발유를 끼얹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켈슨의 전기를 준비하던 미국 골프 전문 기자 앨런 시프넉이 지난해 11월 미켈슨과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PGA 투어는 민주적인 척하지만 사실은 독재 체제다. 선수들을 갈라치기해서 지배한다.” “여성과 성 소수자의 인권을 탄압하고 반정부 언론인(자말 카슈크지)을 살해하는 사우디와 엮이는 건 나도 끔찍하게 무섭다. 하지만 내가 왜 그런 것을 신경 써야 하는가. 이건 PGA 투어를 일깨울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다.”
동료 선수 빌리 호셜(미국)이 “미켈슨은 그가 만든 유산을 더럽히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이가 그의 발언에 공분했다. PGA 투어가 징계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날 미켈슨의 사과 성명이 나온 것이다. 미켈슨은 이날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발언이 공개됐다”고 주장했지만, 시프넉은 “그와 같은 단서는 전혀 달지 않고 한 말이었다”고 반박했다.
미켈슨까지 백기를 들면서 사우디가 추진하는 수퍼골프리그는 무산될 위기다. 무려 1억파운드(약 1622억원)의 전속 계약금을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졌던 ‘헐크’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와 전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도 최근 불참 의사를 밝혔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지난해 이미 “나의 레거시가 있는 PGA 투어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세계 1위 욘 람(스페인)을 비롯해 정상급 선수 대부분이 불참 의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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